그렇다. 바다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뚜벅이였다. 생각이 없다, 진짜. 이래서 남자들끼리 여행 가면 안 돼. 아 근데 또 바다는 예쁘고, 옆에 친구들은 보람찬 표정을 짓는다. 역시 이게 여행이지...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. 찬바람 맞으면서 서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뚜벅뚜벅 걸어서 예약한 펜션에 도착했다. 아니 근데 어떻게 펜션 사진을 한 장도 안 찍고 올 수가 있지? 사진이 없지만, 펜션은 상당히 훌륭했다.

얼마 지나서 입수를 위해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! 그래! 우리는 바다에 들어갈 생각으로 바다에 온 거다! 목적은 그거 하나뿐이었다! 모르고 왔지만, 만리포해수욕장은 서핑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더라. 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장비 없이 물에 뛰어드는 우리가 바로 패기 넘치는청춘 아닐까!


바다에 도착해서 물에도 들어갔겠다, 이제 밥 먹고 낮잠 자야지. 바로 펜션 바로 앞 슈퍼에서 라면이랑 햇반만 사서 대충 끼니만 때우고 잤던 것 같다. 자다 깨서 바라본 바다는 물론 예뻤고, 우리는 물론 다시 배가 고파졌다. 그래서 회를 먹기로 했다. 주변에 문 연 횟집, 조갯집 많았지만 전부 다 필요 없었다. 우리는 수산시장까지 걷기로 했다.

 

사장님 잘 계세요? 정말 감사했습니다


사실 왜 걸었냐면, 우리는 돈이 없었다. 솔직히 택시비도 아까운 상황이었다. 택시비가 약 만오천원쯤 나오는 거리였는데, 길도 엄청 돌아가야 하고 그 돈으로 회나 좀 더 먹자는 생각으로 걸었다. 가다가 만난 등대에서 사진도 좀 찍고, 밤바다도 좀 찍어주고. 감성에 젖어 들었다. 해는 지고, 해수욕장 끝에서 끝까지. 바다에서 산길로. 달빛을 따라서 걸어갔다.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셋이 나란히 걸어갔다. 뭐 춥긴 했지만, 괜찮았다. 그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.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굽이굽이 산길도 끝이 났다. 그 산길 끝에 세븐일레븐 하나가 외롭게 있더라. 들어가서 초코우유 하나로 허기를 다시 달래고 혹시 문을 닫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며 수산시장으로 들어갔다.

정말 다행히도, 문을 연 가게가 딱 두 군데 있더라. 마감하고 계신 시간에 맞춰서 딱 도착했던 것 같다. 누가 10월 말, 저녁 여덟 시가 다 된 시간에 수산시장에 오겠는가. 관광객은 서핑하는 사람 빼고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우리 셋뿐이었을 걸. 수산시장은 아기자기 조그마했다. 그때 어느 가게를 갔는지 모르겠지만, 거기서 만난 분들도 너무 친절했다. 아마 우리가 불쌍해 보였던 것 같다. 남자 셋이 바들바들 떨면서 회 오만원 어친가 사만원 어친가 떠가는데, 뭘 자꾸 주시더라.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 물어보시길래 걸어왔다 했더니, 아버님을 부르셔서 데려다주고 오라고 하시더라. 세상, 그렇게 스윗한 경험을 할 줄이야.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. 가는 길에 담소를 나누면서 왜 여기까지 걸어오냐고 잔소리도 좀 듣고. 감사하다고 인사를 연거푸 하고 내렸다. 진짜 이렇게 빠를 줄이야.

 

그래, 우리는 차가 필요했다. 얘들아, 우리 차를 사자. 차가 필요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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